폴란드의 '황금시대(곡물, 재목, 아마, 대마 등의 교역)'는 17세기 초반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영도가 평원지대가 자연적인 국경이 없었고, 종교적인 싸움, 민족 간의 싸움으로 황금시대는 종결되었습니다. 폴란드는 독일과 스웨덴의 루터파, 러시아와 카자크 자포로크의 그리스 정교, 오스만 제국의 이교도 간의 종교 싸움이 있었습니다. 또한 민족 간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해 갈등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공화국 체제와 군주 체제를 가지고 있어서 또 다른 갈등이 생겼습니다. 귀족들은 무정부 상태를 원했고, 왕족들은 군주 체제를 원했습니다.
1587년 구스타프1세 바사가 통치한 스웨덴 왕조 아래에서 폴란드는 2년동안 모스크바를 점유했습니다. 1610년 공동 왕을 원치 않는 스웨덴과 싸우고 30년 전쟁동안 중립을 유지하면서 투르크를 격퇴시킵니다. 그러나 얀2세 카지미에슈 시기에는 러시아, 스웨덴,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받고 주민 수가 감소합니다. 1606년, 올리바 평화조약 당시에 스웨덴은 리보니아를 점령하고, 러시아는 스몰렌스크, 키예프를 획득했습니다. 그래서 1669년 포돌리아만이 루트크에 소속되었습니다.
1683년 반면 폴란드 귀족 얀3세 소비에스키는 빈 성벽에서 투르크를 급습하고 영토를 확보합니다. 이렇게 스웨덴의 세력이 약해지고, 7년 전쟁과 혁명으로 약해진 프랑스는 러시아, 프로이센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오스트리아는 약화된 폴란드에 개입하여 영토를 셋으로 분할합니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2세는 바르 연맹에 대응하면서 분할원칙을 수영하고, 드비나와 드네프르 강쪽의 백 아시아를 소유합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2세는 마리아테레지아가 갈리시아 점령을 망설이는 동안 포메른을 프로이센에 합병시킵니다.
1791년, 혁명헌법의 채택은 러시아와 프로이센에 유리한 두번째 분할을 재촉합니다. 그리고 1795년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가 폴란드 분할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123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폴란드는 독립국가가 되지 못합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경계하기 위해 영토를 폴란드에게 돌려주고, 크라쿠프, 루블린과 오스트리아령이된 갈리시아의 일부를 추가로 붙여줍니다. 나폴레옹의 몰락 후 빈 회의는 다시 폴란드의 분할을 주장합니다. 프로이센은 포즈난과 그단스크를 점유하고, 오스트리아는 크라쿠프를, 러시아는 루블린을 되찾았습니다. 국가 간의 협상 결과, 바르샤바를 수도로 하고, 러시아 제국과 통합하지 않고, 차르를 왕으로 하는 "의회 왕국"이 건설됩니다. 폴란드인의 자유는 독립 공화국으로 건립된 크라쿠프 자유시에 한정됩니다.
1918년, 폴란드의 지지를 얻기 위해 폴란드의 독립을 약속했던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받아들여집니다. 폴란드는 신생국으로서 한 세기가 넘게 분리되어온 지역을 재결합해야하는 국경선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분할되었던 국경선은 대부분 복구되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 화랑에 의해 둘로 나뉜 독일은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폴란드는 마주르와 슐레지엔 지방의 국민투표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오자 좌절합니다. 폴란드는 무력을 동원해 커즌 라인을 넘어 동쪽 국경을 확장합니다. 이것이 폴란드-러시아 전쟁입니다. 하지만 폴란다의 영토확장 정책은 국제관계와 폴란드 국내 사정으로 위기를 맞이합니다.
1939년, 독일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과국과 불가침조약에는 폴란드 분할에 대한 비밀의정서가 적혀있습니다.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기습공격했고, 부크 강을 경계로 폴란드를 분할합니다. 1940년대, 폴란드의 저항운동이 시작되었고, 블라디슬라프 시코르스키 장군과 국민군을 조직한 스타니슬라프 미코우아이치크가 선도합니다. 히틀러가 소련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독일은 폴란드 전역을 점령했고, 소련은 루도바군으로 전환될 '인민방위군'의 결성과 루블린 국민의회 창설을 장려합니다. 이것을 알게 된 폴란드 국민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거세한 저항을 막기 위해 강력한 탄압을 시도합니다.
그 탄압은 대규모 집단 수용소 건설, 강제 수용, 유대인 학살, 바르샤바 봉기의 분쇄 등으로 제압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갈 때까지 약 6백만명의 폴란드인이 희생됩니다. 1945년, 스탈린은 폴란드 국경선을 1921년 수준으로 복구할 것을 거부하고, 자국 영토를 확장시키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얄타 협정을 통해 독일 영토를 포함하여 폴란드 국경을 서쪽으로 이동시키는데 미국과 영국의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동쪽은 커즌 라인을 경계로 하고, 오데르-나이세선을 확정해 서쪽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북부의 동프로이센 절반을 병합한 폴란드의 국토는 축소됩니다. 그리고 발트해에 면한 해안선을 부여받습니다. 폴란드에 갈리치아, 폴레지아, 볼리니앙의 폴란드계 주민 2백만 명이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인은 추방됩니다. 전쟁 희생자로 인해 폴란드 인구는 3500만명에서 2400만명으로 축소됩니다. 1949년 인민민주공화국을 설립하고, 회복된 의회 민주주의 체제는 오데르-나이세 국경선의 확정을 통해 독일과 합의합니다.
폴란드는 중앙 유럽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16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고, 인구는 약 3850만명정도로 유럽 내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입니다. 폴란드의 수도는 바르샤바이고, 북쪽에는 발트 해, 남쪽에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있습니다. 폴란드는 6계절(0~5도인 초봄,가을 / 5~15도 봄 가을 / 20~25도 여름 / 0도 겨울)이 있습니다.
폴란드는 GDP 6순위로 거대한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 연합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경제 국가입니다. 폴란드 국민의 60%이상이 서비스 업에 종사하고, 30%는 산업 및 제조업, 나머지는 농업을 종사하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화폐는 유로가 아닌 폴란드 즈위티를 사용합니다. 폴란드는 강한 국내 시장과 경제력을 갖췄고, 국가 부채도 작은 편이며 실업률이 낮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활발히 수출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식품, 의류, 신발, 화장실, 가구 등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26세 이하의 근로자는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복지혜택을 적용했습니다.
폴란드의 교통수단은 전철, 버스, 트럭망, 해상교통이 있습니다. 이 교통수단을 통해 유통업을 발달시켰고, 독일에 수출하는 물품을 운송합니다. 유럽에서 가장 긴 도로인 유럽 40번 고속도로는 폴란드를 지나갑니다. 폴란드는 과학적인 기술도 뛰어납니다. 유명한 과학자로는 여성 과학자인 마리 퀴리입니다. 폴란드에는 델피, 구글, IBM, LG, 삼성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글로벌한 기업센터가 설립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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